この随筆は韓国中学校の国語教科書に収録されている作品です。文学作品、特に教科書に日本人が出てくるのは多分この作品がはじめて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中国の魯迅(ロシン/1881-1936)の作品は日本の教科書にも使われていますが、日本の教科書に韓国に関する作品は載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とにかく多くの韓国人の記憶に残っている作品なので一度読んでみてください。 作家:琴兒 皮千得 (1910∼2000?)
인연(因緣):縁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 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수녀님과 김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4月に春川に行こうと思いながら結局は行けなかった。私は聖心女子大学に行ってみたかった。この大学にはある秋、毎週1回ずつ出講したことがある。疲れる出講を1学期やることになったのは、ジュさんとキムさんがわざわざ私の家に来てくれたのもあるが、実は私にも理由があった。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東京)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三浦)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꾸 시로가네(芝区白金)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트피이'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이'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数十年前、私が17歳になった春、私は初めて東京にいったことがある。ある方の紹介で社会教育家である三浦先生のお宅に泊ることになったのだ。芝区白金にあるその家には、三浦先生夫妻と幼い娘3人で暮らしていた。メードや書生もいなかった。目が可愛く笑顔が綺麗な朝子は、初めから私を兄のようになついてくれた。朝に生まれたから朝子と言う名前をつけたと言った。庭には大きい木々があり一年草の花も多かった。訪ねた翌日の朝、朝子はスイートピーをとって花瓶に入れ、私が借りた机の上に置いてくれた。スイートピーは朝子のように小さく可愛い花だと思った。 성심(聖心) 여학원 소학교 일 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聖心女学院小学校1年生である朝子は、ある土曜日の午後、私と一緒に彼女の学校まで散歩に出かけた。幼稚園から学部まで揃ったカトリック教育機関として有名なこの女学院は、市内に位置していながら牧場まで持っていた。朝子は自分の靴箱を開け、教室の中で履く白いスニーカーを見せてくれた。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하였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델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私が東京を離れる日の朝、朝子は私の首に手を回し、頬に口付けをし、彼女が使っていたハンカチとはめていた小さい指輪を餞別としてくれた。隣で見ていた奥さんは微笑みながら「10年くらい経ったら良い相手になれるでしょう」と言った。私は顔が熱くなるのを感じた。私は朝子にアンデルセンの童話集をあげた。 그 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그 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 학년 같은 예쁜 여자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 같이. 그때 그는 성심 여학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それから十年が経ち、そしてまた3,4年が経った。そこまで私は小学校1年生くらいの可愛い女の子を見ると朝子を思い出した。私が2度目に東京に行ったのも4月だった。東京駅近くに旅館を決め、そのまま三浦先生のお宅を訪ねた。朝子はいつのまにか清純で洗練した令嬢になっていた。その家の庭に咲いている木蓮のように、あの時彼女は聖心女学校英文科の3年生だった。少し気まずい感じもしたが、朝子は私との再会を喜んでいるに見えた。先生たちが時々私のことを言ってくれたから、私の存在を覚えていたのだろう。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졌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꼬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꼬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その日も土曜日だった。夕飯の前に一緒に散歩にでかけた。そして計画もしなかった行く先は聖心女学院の方を向かっていた。キャンパスをあっちこっち見回って帰ってくる頃、私は朝子の靴箱はどこにあると聞いた。彼女は何の話と言わんばかりの目で私を見ながら、教室には靴を脱がないまま入ると言った、その後いきなり走りかけ、教室に置いてきた傘を持ってきた。今も私は女性用の傘を見ると、グリーンが綺麗だったあの傘を思い出す。「シェルブルーの傘」と言う映画があんなに好きだったのも朝子の傘のためだったと思う。朝子と私は夜遅くまで文学の話をし、そして握手をして別れた。新たに出版されたバージニアウルフの「歳月」についても話したと思う。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제2차 세계 대전이 있었고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미우라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二世)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二世)와 결혼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その後また十数年が過ぎた。その間第2次世界大戦があり、我が国が解放され、また韓国戦争があった。私は時々朝子のことを思ったりした。結婚しただろうし、戦争中に物騒なことに逢ってはいないか、旦那さんが戦死したのではないか、などと色んなことを想像した。1954年初めてアメリカに行く途中で、私は東京に寄り、三浦先生宅を訪ねた。思ったより街がそのまま残っていた。そして三浦先生家はまだその家に住んでいた。先生夫妻は興奮した顔で私を迎えてくれた。そして朝子は終戦後マッカーサー司令部で翻訳の仕事をしているうちに、そこで出会った日本人2世と結婚し、独立したと言うのだ。朝子が戦争未亡人にならなかったことが幸いだった。しかし2世と結婚したということは気になった。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会いたいと言ったらお母さんが朝子の家へ案内してくれた。とんがった屋根にとんがった窓があるこじんまりした家だった。二十数年前に私が朝子にあげた童話集の表紙にある家もこんな家だった。「あ、綺麗な家!私達も後でこんな家で一緒に住みましょうね」・・・朝子の幼い声が今も聞える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十年くらい早く戦争が起き、その分だけ早く韓国が独立されたら朝子が言ったとおりに、私達は同じ家で暮らせるようになったかもしれない。尖がった屋根に尖がった窓のある家ではなくとも、こんな余計な思いが頭をよぎった。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 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進駐軍)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その家に入るなり出くわしたのは、百合のように枯れていく朝子の顔だった。<歳月>という小説の話をしてから十年がもっと経っていた。しかし彼女はまだフレッシュであるべき若い歳だ。旦那は私が想像したように日本人でもなければ、アメリカ人でもない、そして進駐軍将校ということを威張っているような男だった。朝子と私はお辞儀を何回かし、握手も無しに別れた。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想うにも一回会っては会えなくなったり、一生忘れられないのに会わずに生きていったりもする。朝子と私は3回あった。3回目は会わなかったほうが良かったかもしれない。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今度の週末には春川に行ってこようと思う。小陽川の秋景色が綺麗であ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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